MMA

[스크랩] 2월의 파이터 - Antonio Rodrigo Nogueira

고요한하늘... 2005. 6. 13. 21:29
천 개의 기술로 상대를 먹어 치우는 미노타우루스

“Antonio Rodrigo Nogueira”



안녕하세요? MFIGHT 이민우 기자 입니다.

2월이 벌써 다 갔네요. 아마도 설 연휴가 끼어 있는데다 28일까지 밖에 없어서 더 빠르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전 오랜만에 긴 휴일을 맞아 무얼 할까 고민고민 하다가, 가족들과 함께 마트도 가고 찜질방도 다녀 오고, 전에 못 봤던 영화도 빌려보면서 그냥 빈둥거렸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그간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빠 노릇도 변변히 못 했던 터라 어린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보람찬 연휴였답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금번 연휴기간 중 이번 달의 ‘이 달의 파이터’를 반드시 다 쓰려고 작정했었는데, 결국은 누구로 할까 고민만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휴일이 다 갔더군요. 휴~

사실 이번에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것인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확정된 파이터가 있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이 선수 이야기가 안 올라온다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세련된 주짓수 기술을 유연하게 구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종합격투기의 참 맛을 일깨워준 선수로서 개인적으로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파이터이지요. 자, 이쯤 되면 눈치채셨겠지요? ^^

1,000개의 주짓수 기술을 가지고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여, 미궁에 빠진 사람을 먹어치우는 괴물 ‘미노타우루스’로 불리는 사나이. 2005년 2월의 파이터는 바로 Antonio Rodrigo Noguiera입니다.





Antonio Rodrigo Nogueira(이하 노게이라)는 1976년 6월 2일,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 州(Bahia)에 위치한 Vitoria da Conquista 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형제가 많은 편이었는데요, 쌍둥이 동생인 Rogerio와 Julio, 그리고 여자 형제인 Jamile과 Juliana 등 5남매 안에서 자랐습니다.




노게이라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나이는 놀랍게도 다섯 살 때부터였습니다. 동생 Rogerio와 함께 ‘OGAWA III’라는 인근 도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무술과 첫 인연을 맺게 된 노게이라는, 여덟 살 때까지 이 도장에서 유도를 배웠습니다. 그가 처음 접한 무술이 유도였다는 것은 훗날 그가 주짓떼로의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Wanderlei Silva가 13세 때 무에타이 도장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의 어그레시브한 파이팅 스타일을 갖게 된 것처럼 말이지요. 한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운동을 시작한 노게이라지만, 열 아홉 살이 되어서야 처음 주짓수를 접하고 수련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다소 의외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말씀 드리기로 하지요.




열 살이 되던 해 노게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달려오던 트럭에 치여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당시의 사고 상황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부딪힌 저는 십여 미터 앞에 툭 떨어졌고, 의식은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처 정지하지 못한 트럭이 쓰러진 제 몸 위를 밟고 지나가려 하는 순간, 동생 Rogerio는 절 빼내려고 애썼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지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머리를 웅크리고 차 바퀴를 피하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내 트럭의 무게가 가슴을 죄어오는 느낌을 받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트럭에 의해 무시무시한 사고를 당한 어린 소년은 갈비뼈와 다리가 모두 부러져 버린 채 병원에 옮겨졌지만, 다행스럽게도 혼수상태에 빠진 지 나흘 만에 깨어나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죠. 그리고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건강을 되찾은 그는 드디어 병원 문을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큰 사고를 당했던 그가 그렇게나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남달리 강한 근성과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열 살의 어린 소년이 온 몸의 뼈가 으스러진 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광경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가 거기서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미노타우루스”는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그 날의 사고는 그의 온 몸에 큰 상처자국을 남겼지만, 시련을 이겨낸 그의 의지 역시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함께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다시 유도를 수련하던 노게이라는 14세가 되던 해 전자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브라질의 4대 도시 중 하나이며 성 프란시스코 성당으로 유명한 살바도르(Salvador)로 옮겨오게 됩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 위해 마땅한 곳을 물색하던 그는 ‘트라이애슬론 짐(Triathlon Gym)’이라는 체육관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그 곳에서 CNB 세계 챔피언 출신의 Arcelino Popo 코치로부터 복싱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주짓수 매지션’으로 불리는 노게이라지만 타격에 있어서도 어지간한 스트라이커들의 실력에 뒤지지 않는 것은, 이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기간동안 복싱 트레이닝을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복싱을 수련하던 노게이라는 열 아홉 살이 되던 1995년에서야 주짓수라는 무술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노게이라가 다니던 ‘트라이애슬론 짐’에서 주짓수 마스터 Guilherme Assad가 운영하는 주짓수 클래스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절친하던 친구의 권유로 이 클래스에 참가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는 곧 주짓수라는 무술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답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보다 20Kg이나 가벼운 사람에게 힘 한번 못 써보고 탭을 친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망설임 없이 주짓수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지요.”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한 지 3주 후, 도장대회에 참가한 노게이라는 초심자들이 경쟁하는 화이트 벨트(White Belt)급에서 1위, 띠 구분 없이 스파링을 치르는 오픈 디비전(Open Division)에서 2위를 차지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둬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주짓수에 대한 그의 재능은 숨기기엔 너무도 뛰어난 것이었지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그는 “그 때는 사실 알고 있는 기술도 거의 없었어요. 그저 몇 가지 그라운드 포지션에서 상대를 밀어내는 방법 정도밖에 몰랐죠.”라고 말합니다. 대략 “주짓수 그까이~거, 뭐 대충 상대만 밀어 제끼면 되는 거.” 라는 말인가요? ^^;;

주짓수를 만나면서 노게이라의 인생은 마치 직선주로에 들어선 스프린터처럼 가속이 붙기 시작합니다. 수련 1년 만인 1996년에 블루 벨트(Blue Belt)급 브라질 챔피언 자리에 오르더니, 2년 뒤인 1998년 브라운 벨트(Brown Belt)급에서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국내외 관계자들로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죠. 뛰어난 기량을 인정 받은 노게이라는, WEF(World Extreme Fighting) 프로모터였던 Jamie Levine의 초청을 받아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고, 1999년 6월 12일, ‘WEF 6’에서 David Dodd라는 선수를 상대로 생애 첫 공식 MMA 시합을 가지기에 이릅니다. 이 경기에서 크루서픽스 쵸크(Crucifix Choke)를 사용해 탭 아웃을 받아낸 노게이라는, 데뷔 전에서부터 뛰어난 테크닉을 구사하며 승리함에 따라 종합격투가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기술은 상대와 자연스럽게 십자형태의 포지션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뜻하는 크루서픽스란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한 팔과 두 다리를 사용해 상대의 양 팔을 제압하고 남은 한 팔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기술입니다.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듯 하네요.





데뷔 전을 멋진 승리로 장식한 노게이라는 레슬링과 무에타이를 익히기 위해 미국에 더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본격적으로 MMA 선수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지요. 트레이닝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데 주력하던 노게이라는, 1999년 10월 일본에서 열린 ‘링스(Rings) - King of Kings 1999’에 참가, Valentijn Overeem을 상대로 키 락(Keylock)승을 거둡니다. (얼마 전 PRIDE 29에서 Rogerio가 Alistair에게 이겼으니 “형제는 용감했다.”쯤 되겠네요. Nogueira 형제 VS Emelianenko 형제의 태그 매치는 어떨지……) 무난한 신고식을 치른 노게이라는 이후 링스에서 총 열 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커리어를 쌓아가는데요, Dan Henderson과의 연장혈투 끝에 당한 아쉬운 판정패와 코사카 츠요시와의 무승부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번의 경기(Jeremy Horn, 타무라 키요시 전 등)에서 모두 승리하며 8승 1무 1패의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링스는 지금은 비록 없어진 단체이긴 하지만, 당시만해도 실력 있는 파이터들이 많이 활동하는 무대였습니다. 앞서 열거한 선수들 말고도 Fedor Emelianenko, Randy Couture, Ricardo Arona 등의 선수들도 모두 링스를 거쳐간 선수들이지요. 이런 레벨의 선수들과 치르는 치열한 승부는 강한 기술적, 정신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하는 중압감으로 다가올 텐데요, 노게이라 역시 링스에서의 경기 경험이 쌓여가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 훗날 PRIDE 헤비급 초대 챔피언에 오를 만큼의 실력을 갖춰 나갑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州)에 자신의 체육관을 차려놓고 훈련하면서 WEF와 링스의 링에 오른 지 어언 2년, 노게이라는 주짓수 기술을 보완하고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브라질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브라질리언 탑 팀(이하 BTT)에서 훈련을 시작합니다.

BTT는 주짓수, 서브미션 레슬링, 종합격투기의 보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개발 보급하고자 Murilo Bustamante, Mario Sperry 등의 Carlson Gracie 계열의 주짓떼로들이 2000년 4월에 창단한 팀으로서, 현재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에 센터를 두고 브라질, 미국, 프랑스 등의 나라에 모두 스물 다섯 개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게이라 형제, Ricardo Arona, Vitor Belfort, Allen Goes, Paulo Filho 등이 대표적인 소속 선수로, 공동 수장 격인 Murilo Bustanante와 Mario Sperry 역시 여전히 선수로서 경기에 출장하고 있지요. Chute Boxe와 더불어, 올해 열릴 PRIDE 미들급 GP에 가장 많은 선수를 출전시키는 팀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을 만큼 세계적인 MMA 명문 팀입니다.





BTT에서 보다 체계적인 MMA 트레이닝을 시작한 노게이라는, 2001년 7월 DSE의 PRIDE 15 참가 요청을 받고, 드디어 격투가들에게는 꿈의 무대인 PRIDE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의 PRIDE 데뷔 전 상대는 ‘팔씨름 세계 챔피언’ Gary Goodridge. 1996년 UFC 8에 ‘국술원’ 이라고 쓰여진 검은 도복을 입고 출전해 강력한 팔꿈치 공격으로 상대를 실신시켰던 것을 시작으로 PRIDE 15에 참가하기 전까지 모두 25전의 MMA 전적을 가지고 있는 Gary Goodridge였지만, 던져 놓은 덫에 걸려 ‘미노타우루스’의 첫 사냥감이 되고 맙니다. 상대를 가드로 끌어 들인 노게이라가 긴 다리를 이용해서 트라이앵글 쵸크(삼각 조르기)를 성공시킨 거죠. 평소 자신의 팔뚝에 뽀뽀하는 걸 즐겨 할 만큼 팔뚝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Goodridge는, 자신의 팔뚝에 경동맥이 눌리는 고통을 맛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유달리 굵은 팔뚝이 원망스럽지나 않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Goodridge를 이기며 PRIDE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노게이라는, 곧바로 두 달 뒤 오사카에서 열리는 PRIDE 16에서 ‘해머 하우스의 수장’ Mark Coleman에게 도전합니다. 사실 PRIDE에서 단 1승만을 거둔 노게이라가 메인이벤트 경기에서, 그것도 전년도 PRIDE GP 챔피언 Coleman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기엔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DSE에서는 PRIDE 무대에서는 신출내기일지 몰라도 링스에서 화려한 전적을 쌓은 노게이라의 진짜 실력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거죠.

팽팽하던 스탠딩 대치 상황은 하이킥을 시도하던 노게이라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라운드 상황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노게이라에게 가드 포지션은 오히려 익숙한 공격 루트였습니다. 가드 포지션에서 키 락과 트라이앵글 쵸크를 계속 시도하며 Coleman의 공격을 원천 봉쇄하던 노게이라는, 조급해진 Coleman이 상체를 숙이며 파운딩을 시도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두 다리로 삼각형을 만들어 상대를 가두어 버립니다. 견고하게 조여져 오는 노게이라의 쵸크에 당황한 Coleman은 슬램으로 탈출을 시도하려고 일어섰지만, 노게이라는 오히려 Coleman의 한 팔을 당기며 암 바(Arm-bar)를 성공시킵니다. 결국 Coleman은 한 두 번 탭을 했으나 노게이라가 기술을 풀지 않자,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시마다 레프리를 다급하게 두드리며 탭을 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노게이라 측의 세컨(Sperry, Arona)들의 환한 표정과 Coleman 측의 세컨(Josh Barnett, Goodridge)들의 침울한 표정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순간이었죠. 또다시 트라이앵글 쵸크로 승리한 노게이라. 이 경기 이후 ‘노게이라 = 트라이앵글 쵸크’라는 공식이 성립했을 만큼 ‘노게이라의 트라이앵글 쵸크’는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기술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 ‘크로캅의 하이킥’과도 같이 말이죠. 둘은 분명 다른 형태의 공격 방법이지만, 둘의 공통점은 바로 전광석화(電光石火) 같다는 점입니다.





Coleman과의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노게이라는 기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비교할 수 없이 값진 선물을 받게 됩니다. 작고 예쁜 딸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는 아기에게 Taina란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기 앞에서 노게이라는 더 이상 거친 파이터가 아닌, 세상 누구보다 자상하고 감성적인 아빠가 됩니다. *^^*




Mark Coleman이라는 대어(大魚)를 낚은 노게이라는 두 달 뒤 PRIDE 17에서 Heath Herring과 ‘PRIDE 헤비급의 초대 챔피언’ 벨트를 놓고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단 두 번의 승리로 챔피언십에 도전하는 노게이라에 대해서 DSE에서는 이미 그를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팬들은 그래플링의 참 맛을 보여주는 그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Heath Herring은 ‘텍사스의 광마’로 불릴 만큼 폭풍 같은 러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전 경기에서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 Mark Kerr를 무릎 공격으로 TKO 시키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의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판이한 양 선수의 스타일이 어떤 식으로 맞부딪혀갈지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공이 울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노게이라의 트라이앵글 쵸크가 두려운 Herring은 탑 포지션도 버리고 스탠딩으로 경기를 유도합니다. 상대에 비해서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는 타격으로 승부를 보자는 작전이었겠죠.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피하지 않고 펀치를 주고 받는 난타전에서 노게이라가 오히려 Herring을 몰아 붙이며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라운드에서는 물론, 스탠딩 상태에서도 해법이 없어진 Herring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노게이라의 펀치를 많이 허용한 Herring의 오른쪽 눈가는 출혈로 점점 붉어지게 되죠. 3라운드 총 20분 동안 Herring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풀 마운트 포지션에서 몸을 돌려 마운트 펀치를 피하는 것과 그에 따라 빼앗긴 백 포지션에서 상대의 ‘리어 네이키드 쵸크’를 피하기 위해서 다시 몸을 돌려 풀 마운트 포지션을 주는 일, 정말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노게이라는 모든 포지션에서 공격의 우위를 점하며 차근차근 상대를 무너뜨렸고, 결국 경기의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두 팔을 번쩍 들며 승리를 확신합니다. 판정결과는 역시 심판 전원 일치의 노게이라 승리. 노게이라는 MMA 링에 오르기 시작한지 불과 2년 만에 PRIDE의 초대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안습니다.





왕좌에 오른 노게이라는 이후 엔센 이노우에, Bob Sapp, Semmy Shilt 등을 연파하며 PRIDE에서의 무패행진을 이어 갑니다. 특히 ‘야수’ Bob Sapp과 경기에서 압도적인 체격조건의 열세를 극복하고 한 순간의 기회를 노려 암 바를 성공시키며 승리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진정한 파이터의 정신력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비록 얼굴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이런 모습에 감동을 느낀 일본의 격투 팬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요즘에 PRIDE 중계석에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모델 코이케 에이코 양 역시 이때부터 노게이라의 광 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죠. ^^




노게이라가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 시절, 혜성처럼 등장하여 Semmy Shilt, Heath Herring 등의 헤비급 강자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Emelianenko Fedor였습니다. Fedor는 Herring전 승리로 타이틀 도전권을 획득, PRIDE 24에서 노게이라에게 도전할 예정이었으나 Fedor의 부상으로 인해 두 선수의 대결은 다음으로 미뤄졌죠.

그리하여 노게이라는 2002년 12월 23일 PRIDE 24(Cold Fury 3)에서 Dan Henderson과 대결하게 됩니다. Henderson이라고 하면, 링스 시절 자신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겨 주었던 사나이였으므로, 당시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노게이라로서는 유일한 오점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죠. 비록 타이틀 전은 아니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링 위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시종일관 노게이라의 공격과 Henderson의 방어의 양상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노게이라는 1,2라운드 내내 오모쁠라따와 로우 키 락 등으로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을 몇 번이나 맞이하였으나, 그때마다 Henderson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는 근성을 보여 주었죠.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킨 노게이라는 풀 마운트 포지션을 차지합니다. 안정된 자세에서 하이 키 락을 시도하던 노게이라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암 바로 공격 전환했고, 버티던 Henderson은 결국 그립이 풀리며 팔이 펴지자 탭을 치고 말았습니다. 3라운드 1분 49초 만에 암 바 승. 노게이라로서는 PRIDE 7연승에 성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두 선수의 체중 차는 15Kg. 사실 이 정도의 체중 차이에 상대가 헤비급 정점의 테크니션이라면 아무리 근성이 좋은 Henderson이라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패배했지만 팬들은 좋은 경기를 보여준 그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Henderson은 이 경기 이후 4연승을 구가,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올해 미들급 GP 출전자 명단에 무난히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2003년 3월 16일 PRIDE 25에서 노게이라는 PRIDE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노리는 Emelianenko Fedor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Fedor의 송곳과 같은 얼음 펀치 앞에서 노게이라는 그 어떤 마술도 보여주지 못한 채 경기를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판정은 3:0 Fedor의 승리. 노게이라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단 세 번의 경기 만에 PRIDE 헤비급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기뻐하는 Fedor의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Fedor와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Fedor와 경기 이후 노게이라는, 부상이 있던 허리도 치료할 겸 네덜란드로 건너가 Peter Aerts와 함께 타격에 대한 훈련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2003년 8월, 미들급 GP(Total Elimination 2003)가 열리는 사이타마 아레나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죠. 그의 재기전 상대는 ‘UFC의 자객’ Ricco Rodriguez. KOTC와 UFC에서 헤비급 챔피언을 역임한 바 있는 Rodriguez는 공교롭게도, 2000년 아부다비 컴뱃에서 니 바(Knee-bar)로 노게이라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선수였습니다.

경기는 예상 외로 지루하게 진행되었습니다. Fedor에게 쓰라린 경험을 해서인지 ‘가드 포지션을 피하겠다’고 말했던 노게이라는 상대를 먼저 테이크 다운 시키면서 1라운드를 잘 풀어가는가 싶었습니만, 잠시 후 스윕을 당하면서 Rodriguez의 파운딩에 맞서야 했습니다. 가드 포지션에서 몇 차례의 서브 미션 공격(트라이앵글 쵸크, 암 바, 로우 키 락 등)을 시도해 보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무위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Rodriguez 역시 소극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따금 태클로 노게이라를 넘어뜨리긴 했지만 탑 포지션에서 상대를 크게 위협할 만한 공격은 보여주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습니다. 누가 우세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효타가 없는 경기였습니다.

경기는 모두 끝이 나고 드디어 판정의 순간. 예측하기 힘들 것만 같았던 결과는 3:0 노게이라의 우세로 나왔고, 어렵게 승리한 노게이라는 한숨 돌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밝게 웃습니다. 반면 자신이 승리를 확신했던 Rodriguez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링을 떠나지 못했죠. 지금도 MMA 매니아들은 당시 경기 판정의 적정성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어떠냐고요? “PRIDE에 오면 PRIDE 법을 따르라.”





지난 달 ‘크로캅 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원래 2003년 11월 PRIDE-Final Conflict 2003에서는 Fedor와 크로캅의 타이틀 매치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만, Fedor의 부상으로 인하여 크로캅과 노게이라의 잠정 타이틀 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노게이라로서는 저 멀리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던 왕좌를 향한 길에, 갑자기 지름길이 뻥 뚫린 듯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것이죠. 노게이라는 UFC 최고의 타격가 Pedro Rizzo와 함께 트레이닝 하는 등, 크로캅이라는 세계 최강 스트라이커와 싸울 만반의 준비를 다 하였습니다. 반면 크로캅은 “Fedor와 싸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벨트를 가지고 있는 놈과 싸우고 싶은 것이다!”라며 노게이라와의 대결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경기를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스트라이커 vs 최고의 그래플러’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 경기는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노게이라는 1라운드 내내 크로캅의 타격에 고전하였지만 2라운드에서 드디어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며 크로캅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 들입니다. 풀 마운트 포지션에서 계속해서 노게이라의 펀치를 안면에 허용하게 되자 성급히 탈출을 시도하는 크로캅.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려오던 노게이라는 크로캅의 한 팔을 잡고 리버스 암 바를 시도했고 고통을 견디지 못한 크로캅은 마침내 생애 처음 탭을 두드리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노게이라는 PRIDE 헤비급 잠정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 다시 한번 타이틀을 놓고 Fedor와 대결할 자격을 얻게 되었죠.





이제 때는 바야흐로 2004년, 노게이라에게 다시 한번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PRIDE 2004 헤비급 GP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이었지요. 1년 전 Fedor에게 패배의 쓰라림을 맛본 이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절치부심해 왔던 노게이라로서는 도저히 놓칠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16강 전 상대 요코이 히로타카와 8강 전 상대 Heath Herring에게 차례로 아나콘다 쵸크(Anaconda choke)를 선사하며 승리합니다. 몸 길이 10미터의 뱀 아나콘다가 먹이를 칭칭 감아 졸라 죽이듯이, 노게이라는 요코이와 Herring을 질식시키며 우승을 향한 집념을 불태웠습니다.

4강에서 만난 ‘무서운 신예’ Sergei Kharitonov도 Fedor를 향해 달려가는 그를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주짓수와 코만도 삼보의 대결’로도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에서 스탠딩 타격전과 그라운드 공방 모두에서 우위를 점한 노게이라가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승에 오르게 되었고, 결국 노게이라는 오가와 나오야를 꺾고 올라온 Fedor와의 결승에서 만나게 되었죠.

그러나 결승전은 ‘버팅으로 인한 Fedor의 부상’으로 인해 ‘불완전 연소’로 남게 됩니다. 가리지 못한 최강의 자리는 다음 대회로 연기되었습니다.





경기 후 노게이라는 No Contest라는 DSE의 결정에 대해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을 향해서 모든 것을 걸고 트레이닝 해 왔다. 이 토너먼트에서 목숨을 잃어도 상관 없다는 기분으로 싸워 간신히 결승에 도착했고, 상대는 Fedor였다. 그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경기는 그냥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지만, Fedor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였건 간에 그 시점에서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고 한다면 분명 Fedor는 그 경기의 패자인 것이다. 어쨌거나 다음 리매치에서 반드시 이겨 다시 한번 PRIDE의 정점에 서겠다.”라며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재경기에 대한 분연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노게이라는 GP 시합 전 왼팔 뼈가 골절되었지만 진통제를 맞고 링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노게이라를 더욱 분노하게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노게이라와의 결승전 후 가족들과 유원지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Fedor의 사진을 보게 된 것인데요, 이마에 반창고 하나 붙이고 롤러코스터를 타며 활짝 웃는 Fedor의 모습을 보며 ‘시합 다음 날 이렇게 놀 수 있을 정도라면 왜 반창고를 붙이고 링에 돌아오지 않았는가’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사실 경기의 중단은 의사가 판단한 것이지 Fedor가 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No Contest의 책임을 Fedor에게 전가하는 것이 적합하지는 않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노게이라의 입장에서는 분명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겠죠.





노게이라의 왼팔 골절로 인해 미뤄진 양 선수의 리매치는 2004 PRIDE 연말 이벤트에서 치러지게 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이 경기에서 노게이라는 다시 한번 Fedor에게 무릎 꿇고 말았죠. 오히려 2003년의 경기 때보다 양 선수의 기량 차가 더 벌어져 있다고 말할 만큼 노게이라는 무력한 경기를 펼친 끝에 결국 판정패를 당하며 분루를 삼켰습니다.




PRIDE에서의 성공은 노게이라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이미 브라질에서 꽤나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돈도 많이 벌었고 말이죠. 그러나 어린 시절 트럭사고로 사경을 헤매었던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있는 노게이라는 현재 브라질의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Fun Doctors”란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삐에로 복장을 한 여러 사람을 국립 병원 소아과에 투입하여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린 환자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바로 노게이라가 착안해냈다고 하네요. 그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 PRIDE 헤비급 챔피언 Fedor의 다음 도전자는 크로캅으로 결정이 된 상태입니다. 크로캅에게 이겼던 노게이라지만, 이미 Fedor에게 두 번씩이나 패한 그로서는 Fedor와 크로캅의 경기 이후를 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노게이라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묵히 자신을 단련시켜 다시 한번 최강의 자리에 도전할 것입니다. 그는 단 한 번도 KO로 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만큼은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정신력의 사나이입니다.


Nogueira Forever!


이민우 기자 (Fanta@mfight.co.kr)
출처 : 쌈박질클럽(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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